개성공단은 작은 ‘통일 공간’
가장 성공적인 경협 모델…남북긴장 완화에도 큰 역할
한국의 기술과 자본, 북측의 노동력이 결합된 개성공단은 지난 2003년 6월 착공된 이래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남북 경제협력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개성공단은 지난 1999년 10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공단건설 등을 협의한 이후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 직후인 2000년 8월 현대아산이 북한 아태평화위원회와 ‘공업지구 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같은 해 8월에는 개성공단의 투자보장, 이중과세방지, 청산결제, 분쟁해결에 관한 4대 남북경협합의서가 남북간에 발효된 후 2004년 6월30일에는 9만 2562㎢의 시범단지가 준공됐다.
당시 중소기업의 관심도 폭발적이어서 시범단지 입주기업 선정 경쟁률이 9대 1에 이르기도 했다. (주)로만손 등 15개 기업이 입주계약을 체결하고 입주기업인 주방용품 전문업체 ‘리빙아트’는 같은 해 12월15일 개성공단 최초 제품을 생산 판매했다.
이후 2006년 1단계 부지가 조성돼 현재 123개 업체가 개성공단에 입주해있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중앙회는 개성공단의 조기 조성을 희망하는 중소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한편 2006년 1단계 조성사업 주체인 토지공사와의 업무협정 체결하고 개성공단 입주 신청를 수행했다.
개성공단은 경제적 의미 이외에도 남북이 통일을 실험하는 공간으로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전쟁을 억지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특히 개성공단은 금강산 관광객 총격피살 사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김정일 위원장 사망 등 남북관계가 극도로 긴장된 국면에서도 정상적으로 운영돼 남북경협의 성공적인 모델인 동시에 남북간 긴장완화는 물론, 남북접촉의 매개로도 역할을 해오는 등 한반도 평화 유지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
조봉현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개성공단은 남북한이 경제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뿐 아니라 작은 ‘통일 공간’으로서 의미가 크다”며 “남북한 주민이 개성공단에서 같이 호흡하면서 이질감을 극복하면서 통일 이후 발생할 남북한 갈등을 사전에 완화한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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